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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연결- 검색어를 찾는 여행- 아즈마 히로키

어려운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오랜만에 일본 에세이 부분을 가서 이것 저것 보다가 이 책을 집었다.

 

책 제목이 '검색어를 찾는 여행' 이듯 이 책은 인터넷, 검색, 여행과 관련된 내용이였다. 처음에 책을 집었을 때에는 '약한 연결'이랑 '검색어를 찾는 여행'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나, 이 책을 끝까지 읽어 보니, 총 9장까지 같은 말은 반복하고 있었다.

주제는 약한 연결. 이 말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직접 경험하고 부딪히는 아날로그적인 경험들이나 기회들이 우리의 삶을 더 소중하게, 유일무이하게 만들어 줄 거라는 것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바깥에서 보면 단순히 환경의 산물일 뿐이다. 그런데 안에서는 모두 '유일무이한 나'라고 느낀다.'

 

그러니까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유일무이한 나로 만들고 싶으면, 내가 만들고자 하는 내 모습이 있어야 할 환경속으로 직접 가라고 말한다.

0장, '들어가며'에서 제시한 예가 재미있었다. 도쿄 대학에 가고 싶다면, 도쿄대를 많이 보내는 고등학교에 다니라는 것이다. 고급 과외를 받고, 밤새워 공부를 하고, 족보를 푸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장 확률이 높은 방법인 도쿄대를 많이 보내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고 속으로 끄덕 끄덕 했다. '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정말 맞는 말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대에 가고 싶으면 서울대학교를 가장 많이 보내는 학교에 다니며 그 환경 속에서 지내는 것이 가장 와닿는 방법인 것이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집었을 때 이 0장 들어가며의 내용이 매우 흡입력이 있고 좋았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3장, 4장, 5장 읽어 나갔는데 뒤로 갈수록은 그냥 가볍게 읽어나갔다. 왜냐하면 이 책은 조금... 한번에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쉽게 쉽게 풀어서 말하면 더 이해가 잘 될 것 같은데. 자꾸 저자 본인의 일상과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내용을 섞어서 얘기해서 그런지 뒤죽 박죽 내 머릿속은 정신이 없어진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현장을 방문했던 저자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지역을 관광지화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말은 처음에는 정말 어이가 없고 '미친거 아냐?'라고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읽다 보면 아아 그렇군. 하고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사건을 두고 좁아지지 않는 사이와 입장에 대해서 얘기하는 부분도 조금 읽으며 '뭐지?' 싶었는데, 또 이해가 된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나라가 일본에 주장하는 것들에는 증거가 있는데(심지어 위안부 할머님들은 살아 계시기까지 한데) 그 증거들을 이 저자는 안 찾아본것인지 못 찾아 본것인지 그냥 중립적인 입장으로만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문제는 확실히 잘, 잘못이 있는 것인데 그걸 모르는 것 같다.

저자는 말로 하는 것은 힘이 없고 메타성의 무력함에 빠져버린다고 했다. OK, 그건 이해 됨. 하지만 101page를 보면 '문서, 사진, 증언이 남아 있어도 얼마든지 현재의 세계관에 맞춰 재해석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다. 그러나 해석의 힘은 사물에 못 미친다. 역사를 남기기 위해서는 그런 '사물'을 남기는 것이 제일 좋다.'라고 하는데 일본 위안부 문제의 사물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의 존재보다 더 확실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분명히 사물을 남기랬는데, 그런 가스실 건물도 분명한 사물이 될 수 있겠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에 남겨진 학대자국과 신체에 남겨진 장애들은 산 증거, 산물이 아닌가? 일본 위안부 문제의 증거를 사물로써 남겨야 한다면 피해당한 건물(건물이래봤자 타버린 목재건물이거나 천막정도이겠지)이나 남성의 성기, 여성의 성기를 박제하여 남겨야 한단 말인가? 성폭력을, 성폭행을 어떻게 사물로 남겨야 하지? 문서, 사진, 증언은 말에 좌지우지 될 수 있으므로 힘이 없다고 했는데, 그건 좀 이 사람의 오판인 것 같다. 

하,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보길. 일본의 입장도 이해하고, 이해하려고 늘 충분히 노력을 하지만. 백년도 지나지 않은 일들이 증거로, 사람으로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는데 이런 확실한 문제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일본의 특성, 사과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닌, 한 번 이 문제에 대해서 사과를 하고 잘못을 인정한다고 획을 그어버렸을때의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는 일본만의 고유한 그 특성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넘기려 한다. (사실 문제를 인정하고 짚고 넘어가는 것이 후의 훨씬 더 많은 기회와 이득을 가져다 줄 텐데 말이다.) 위안부 문제는 우선 인간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말이 길어져 버렸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의미 하나는 분명히 건진 느낌이다.인터넷은 검색어를 입력해야만 그것에 해당하는 결과를 갖다준다. 검색어를 입력하기 전에는 나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대다수가 주어진 환경 속에서 그저 그렇게 다들 비슷 비슷하게 살아가니까 우리가 찾게 되는 검색어들도 다 거기서 거기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유일무이한 존재라기보다 그냥 하나의 사람들 덩어리로 보이는 것이다. 개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위해 직접 검색어를 찾으러 뛰어 다녀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직접 돌아다니며 새로운 검색어를 찾아나가고 신박한 정보들을 흡수해서 개개인이 다채롭고 개성있는 모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맞는 말 같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예전부터 조금씩 느껴왔던 것들을 텍스트화 해 주고 확실하게 해준 책 같다. 고등학교 때 쯤부터 생각해봤던 것 같다. 어딜 가나 인터넷이 있으니 인터넷에 접속된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그렇기 때문에 서점에 가면 다 똑같은 책, 옷가게에 가면 다 비슷한 옷, 어느 도시에 가던 똑같은 분위기의 아파트들과 비슷한 상권가와 학원가......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런 비슷한 모양은 사람이 3시 세끼를 먹고 욕구를 채워 가며 사람들과 섞여 사는 사회이기에 당연한 것 아닐까? 이건 이렇게 생각하냐 저렇게 생각하냐에 따른 것 같다. 하지만 양 쪽 다 주장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이 작가의 말이 틀리거나 너무 과장된 것 같진 않고 그냥 인정할 만한 정도인 것 같다.

 

이 책은 정말 내가 무슨 말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게 하는 것만 같다. 복잡하고 어렵고 약간 뒤죽박죽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지금이라도 당장 그냥 오프라인의, 아날로그의 노이즈에 집중해서 특별하고 유일무이한 경험들을 쌓고 싶어 진다.

마치 무계획 여행 속 상상치 못한 경험들이 마구 샘솟는 것 처럼, 계획을 철저히 하고 떠난 여행에서도 잠깐 삐끗 계획 밖으로 삐져 나갔을 때에 마주쳤던 그 잊지 못할 특별했던 기억.

 

아직 다 소화하지 못한 책이지만, 소화하려면 엄청나게 오래 걸릴 것 같기 때문에 정말로 느리게 하루 하루 떠올리며 생각하려고 한다.

아무튼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의미있는 책인 것 같다.